대구의 중심가에 벗어나 있는 성모당을 찾아 갔다. 아이가 자고 있어서 나 혼자 남아 있는 근대 건물을 보러.


1914년 성유스티노신학교. 신학교 안에서 아직도 쓰이는 것 같았다.



샬트르성바우로수녀원. 들어가 보고 싶어서 안내에 물어봤지만 허락해주지 않았다. 멀리서만 보고 돌아왔다.



1918년 성모당, 수녀원을 보지 못하고 별 기대 없이 올라간 성모당.

신도가 아닌 나도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게 할 정도로 마음 뭉클했던 곳이다.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한 그 곳에서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고 왔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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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골목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길이다. 그 길 위에 살아 있는 역사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재밌는 곳이기도 하다. 오래전부터 있던 곳이라, 골목골목 후미지 곳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하다. 안내도 잘되어 있어서 방문자들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.



1898년 대구제일교회, 이제 안쓰는. 건물인지 닫혀 있어서 아쉬웠지만 그 당시 이정표였던 것 처럼 지금도 이정표 노릇을 한다.




골목골목 탐험이 재밌던 곳, 저 골목 끝에 가면 어디론가 갈 것 같은 신비한 느낌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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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교사 집들 근처에서 한참을 머물었다. 주말이고 옆에 교회가 있어서 사람도 북적였고 잘 꾸며진 정원덕에 아이도 좋아했던 곳. 그 길을 따라 3.1만세 운동길로 갔고, 다시 그 길 끝에 있는 계산 성당에 갔다.



3.1운동이 일어났던 그 길은 이제 관광지 정도로 의미가 퇴색했지만, 낡고 좁은 길은 뭉클하긴 했다.



종교가 있던 없던 성당의 스테인글라스는 항상 뭉클하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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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구의 근대건물은 교회를 중심으로 많이 남아 있었다. 도시의 부유함은 유적에 대한 정성으로 증명되곤 하는데, 대구는 그 중 가장 으뜸인 도시인 것 같다. 선임견을 갖기 보다는, 그나마 얼마 안되는 유적을 잘 남겨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들기도 했다.



1910년, 스위츠 주택



1910년, 챔니스 주택.



1910년, 블레어 주택. 사랑방처럼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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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부터 줄이 길게 이어져있었다.
아직 꼬마가 있는 우리집 식구는 고추가루 범벅을 해서 먹지 못해 약간 느낀했지만 그래도 독특한 맛의 만두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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